전주 한옥마을의 맛과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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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여행

전주는 후백제의 수도이자 조선왕실의 고향이다. 신라 시대부터 전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천 년 역사의 땅이라는 자부심이 전주사람들 가슴에 흐른다. 전라도라는 이름도 전주와 나주에서 따온 것이며, 전라북도 도청도 전주에 있다. 예향의 고장으로도 불린다.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의 필수품인 합죽선, 판소리가 유명하고 음식문화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 전주. 그중에서도 가장 고즈넉한 한옥마을로 떠나보자.

조선의 풍패지향, 제2의 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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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지키던 사대문 중 홀로 남았지만 위풍당당한 기세는 남부럽지 않은 풍남문이 한옥마을의 시작점을 알린다. 풍남문을 등지고 한옥마을을 바라보면 오른쪽에는 전동성당이, 왼쪽에는 경기전이 있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최초 순교자인 권상연, 윤지충이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로마네스크양식의 전동성당은 지난한 세월을 견딘 벽돌 한 장, 한 장이 자아내는 아우라가 남다르다.
경기전의 전(殿)은 궁궐을 뜻한다. 한양이 아닌 곳에 궁이 자리한 이유가 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셨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고향은 함흥이다. 고향을 그토록 그리워해 함흥땅의 흙과 억새로 묘를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오는 그의 어진을 전주에 모신 까닭이 더 궁금해진다. 바로 그의 본관이 전주이기 때문이다. 조선을 건국하고 이성계는 자신의 6대조까지 왕으로 추대한다. 전주는 5대조인 목조까지 살던 곳이었지만, 당시 전주 부사와의 불화로 인해 함경도로 떠난 것이라고 한다. 경기전 안에는 태조의 어진뿐만 아니라 시조 이한의 위패, 조선왕실의 중요한 기록물을 보관하는 사고, 예종의 탯줄을 모신 태실 등이 있다.
전주를 둘러보면 조선이 건국될 무렵의 긴장감 넘치는 정국을 짐작할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고려의 장군으로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승전을 축하했던 자리에 세운 오목대에 올라서면 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육교를 건너 이목대에 올라서면 고종황제가 “목조대왕 구거유지”라고 친필로 쓴 비석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런 인연으로 조선 황실의 마지막 황손 이석은 한옥마을 내 승광재에 터를 잡고 일주일에 한 번씩 관람객들에게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수를 대접하고 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재밌게 본 사람들은 배경으로 혜화동의 성균관 대학교를 떠올렸을 것이다. 유생들이 서로 어울리며 공부를 했던 곳과 극 중 유아인이 올랐던 커다란 은행나무는 전주향교가 배경이다. 공자를 비롯한 다섯 성인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지금의 강의실인 명륜당, 숙소인 동재와 서재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현존하는 향교 중에 가장 온전하다고 알려진 전주향교다. 은행잎은 벌레를 쫓는 용도로 쓰이는 것처럼, 유생들도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심었던 은행나무의 수령이 4백 년을 넘어섰다. 지금도 가지가 휠 정도로 은행이 가득히 열린다.

얼마나 고왔으면 비빔밥 이름이 화반일까

전주 여행

전주여행 하면 요새 떠오르는 단어가 먹방(먹는 방송의 약어로 먹는 모습만 보여줌)이라고 한다. 맛집과 먹을거리가 워낙 많아 음식 위주로만 코스를 짜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바게트 버거, 츄러스, 팥빙수, 초코파이 등 간단한 요깃거리부터 칼국수, 콩나물 국밥, 오모가리탕 같은 든든한 한 끼 식사까지 하루에 5끼 이상먹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여행자들 사이에 오간다. 전주는 기름진 옥토에 맑고 깨끗한 물과 공기 덕에 일찍부터 음식으로 이름났던 곳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명실상부한 최고의 음식으로 인정받는 것이 바로 비빔밥. 전주비빔밥은 그 차림새가 꽃과 같다고 하여 화반(花盤)이라고 불렸다. 정성은 물론이요, 제철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맛을 내니 세계인이 반할만 하다.
전주비빔밥이 격식을 차린 음식이라면, 서민들의 응어리진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은 콩나물국밥이다. 뜨끈한 콩나물 국물에 후루룩 밥을 말아 달콤한 모주 한 잔을 곁들여 먹으면 배짱이 두둑해진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이라고 해서 다 비슷한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입맛에 따라 넣는 부재료와 먹는 방법이 다르다. 개인의 취향을 살려 먹을 수 있는 음식인 것이다.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마다 손에 들고 다니는 음식이 있다. 줄이 길게 늘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맛집도 수두룩하다.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한정식과 막걸리타운, 가게에서간단한 안주에 맥주 한잔 곁들이는 가맥 등 전주사람들의 맛과 멋은 어느새 경험하고 싶은 관광코스가 되었다. 토박이들은 볼 것 많고 배울 것도 많은 전주가 먹방으로만 기억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

게으른 청년과 화사한 달동네, 현재를 살다

전주 자만벽화

한옥마을을 조금 벗어나 걷다 보면 풍남문 남쪽으로 싸전다리 앞에 있는 남부시장에 이른다. 다른 전통시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2층으로 올라서면 색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아기자기하고 감각적인 청년들이 모여 운영하는 청년몰이 이곳에 있다. 직접 만든 음식과 술, 소품들부터 톡톡 튀는 옷들까지 한데 모였다. 이들을 하나로 모은 것은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열심히 살아도 어려운데 적당히 벌어서 잘 살고 싶다는 이들의 포부는 게으름일까 욕심일까? 우려 섞인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 잘 살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어르신들, 다른 상인들, 찾아온 손님들과 어울리면서.
전주에는 벽화마을도 많다. 노송동의 얼굴 없는 기부천사를 위해 조성된 천사벽화마을, 남고산 아래 경치 좋은 산성벽화 마을 등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한다. 한옥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면 있는 자만벽화마을이다.
어둡고 비좁던 골목길이 화려한 그림 옷을 입었다. 조용하던 마을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바뀌면서 활기가 넘친다. 주민들의 생활 터전인 만큼 기본적인 예의를 지킨다면 오래도록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남을 것이다. 전주에 오면 천천히 걷자. 끝이 보이는 대로가 아닌 골목골목을 돌아 무엇을 마주치게 될지 기대하며 걷자. 여유를 갖고 둘러보면 에어컨이 아닌 부채의 미덕이, 판소리에 담진 민족의 애환과 흥이, 처마 밑에 걸린 햇살의 나른함이 느껴질 것이다.

 

글·사진 : 윤나래
자료제공 : 전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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