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진부터 갑곶돈대까지 호국돈대의 길 따라 걷는 강화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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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면적이 300㎢가 넘는 서울과 가까운 섬 강화도.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한강과 서해가 만나는 길목에 있는 커다란 섬이다. 선사시대의 유물과 고인돌, 단군왕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마니산 참성단 등 우리 민족의 뿌리를 짐작하게 하는 역사유적이 무수히 남은 땅이기도 하다. 걷기 좋고 자전거 타기 좋은 강화의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문화유적이 반긴다. 강화에 이렇게 많은 유적지 가운데 몇 곳을 소개한다.

맛이 유혹하고 길이 손짓하는 강화

덕진진(좌), 광성보(우)
▲덕진진(좌), 광성보(우)

강화도는 수도권과 가까운 서해의 섬으로 배를 타지 않아도 다리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섬이다. 사실 강화도는 가을이 되면 온갖 제철 식품이 쏟아진다. 황톳빛 자랑하는 고구마부터 알싸한 맛이 구미를 돋우는 순무, 윤기 흐르는 강화섬쌀에 팔딱팔딱 뛰는 대하와 게까지. 주말만 되면 강화를 찾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최근에는 테마와 이야기가 있는 강화도만의 걷는 길, ‘강화 나들길’이 정비되어 나들이 가듯 강화의 속살을 찬찬히 둘러보는 여행도 인기를 끌고 있다. 또, 한강을 따라 아라뱃길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가 완공되면서 두 바퀴로 강화도를 찾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과거 드라이브 코스로 여겨졌던 강화의 해안 길을 천천히 걷고 달리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호국돈대길 따라 걷는 강화의 역사

오두돈대(좌), 화도돈대(우)
▲오두돈대(좌), 화도돈대(우)

사시사철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보니, 좋은 날씨를 벗 삼아 산책하듯 걷거나 라이딩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여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눈썰미 좋은 여행객이라면 강화도에 주목할 만한 역사유적지가 한둘이 아님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규모로는 한 손에 꼽히는 커다란 섬이지만, 면적이 더 넓은 거제도나 진도, 남해도보다 역사유적이 월등히 많다는 것이 강화도의 특징이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여행객들이 반드시 지나게 되는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사이에만 역사유적지가 무려 7곳이나 된다. 하나하나 살펴보자.월곶면을 거쳐 강화를 들어가면 북쪽에 강화대교를, 대곶면을 거쳐 강화에 가면 남쪽에 초지대교를 통해 강화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섬의 동쪽 면을 담당하는 이 남북을 잇는 길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김포시와 마주하고 있다. 강화를 드나드는 길목인 두 다리 사이를 차로 달리면 삼십 분 남짓 걸린다. 강화에서는 이길을 호국돈대의 길로 이름지었다.
15㎞가 조금 넘는 이 짧은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유적지만 해도 무려 7곳이다. 남쪽 초지진부터 올라가면, 덕진진, 강화광성보, 오두돈대, 화도돈대, 용진진, 갑곶돈대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진과 돈대가 동쪽 해안에 몰린 까닭

용진진(좌), 갑곶돈대(우)
▲용진진(좌), 갑곶돈대(우)

유달리 진과 돈대라는 명칭을 가진 곳이 많다. 이 두 가지 용어는 모두 군사용어다. 진이란 군사들의 대오가 배치되어 있는 곳, 즉 진영을 뜻하고 돈대란 평지보다 높게 조성한 성안에 축조한 포대를 말한다. 광성보의 보(堡) 역시 작은 성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멀리 중국을 바라보는 서쪽 면이 아닌 내륙을 향한 동쪽 면에만 이런 지명이 몰려있다는 점이다. 섬의 남쪽 면이나 북쪽 면에도 드물다. 상식적으로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세가 아닌 본토를 경계하는 모양이니 말이다.
직접 돌아보면 더욱 의아하다. 포대의 포구들이 모두 내륙을 향하고 있다. 큰 바다를 등지고 우리 땅을 겨누고 있는 모양새다. 이 이상한 모양새를 풀 실마리는 모두 고려에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기까지 오랜 세월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강화도지만, 동쪽 해안의 유적지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축조된 전적지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고려 시대 중에도 왕권이 약화되고 최씨 정권이 힘을 떨치던 시대, 몽골의 가혹한 수탈에 항거하고자 강화로 천도한 것이 1232년(고종19)의 일이다. 육지와 가까우면서도 조석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가 사나운 해협을 낀 강화도를 수도로 삼아 39년간 몽골에 대항하는 전시 수도로 기능한 것이다.
다리가 놓여 이제는 섬이 아니게 되었지만, 강화에는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섬을 수도로 삼아야 했던 당시를 짐작할 수 있는 전적지들이 줄지어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것만으로도 8백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를 수 있는 곳. 강화가 가진 매력이다.

 

글 : 윤나래
자료제공 : 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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